어릴 적 우리는 책 속에서, 어른들의 말 속에서 옳고 그름에 대해 배웠다.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살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읽던 이야기책에는 늘 정의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부는 결국 무너진다는 교훈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가다 보면, 그때 배웠던 가치관과 지금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함을 체감하게 된다.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건 ‘성과 중심 사회’의 날카로움이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종종 묻히고, 돈을 많이 벌면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흐릿해진다.
심지어 때때로 ‘잘못된 방법으로라도 돈을 벌었으니 능력 있는 것’이라는 식의 왜곡된 시선까지 존재한다.
어린 시절 책에서 배운 ‘상도덕’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상도덕이란, 장사를 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도리와 도덕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장사에도 인(仁)과 의(義)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장사꾼은 욕심을 앞세우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은 지금 들어도 가슴에 와닿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효율’과 ‘이익’이 도덕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다. ‘팔리는 것이 옳다’, ‘사람들이 사니까 만드는 것이다’라는 논리가 시장의 우선 가치를 차지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상도덕은 쉽게 밀려나고, 도덕적인 양심은 ‘마음이 약한 사람의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 체제 속에서 먹고살며, 자유롭게 선택하고 소비하며, 또 그 안에서 꿈을 펼친다.
문제는 ‘돈’이 인간적인 가치를 대체할 때 생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일의 가치를 따질 때도, 기준이 ‘얼마짜리’로 환산되면 삶은 점점 피폐해진다.
상도덕은 단순히 장사하는 사람의 윤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다.
요즘 들어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시간이 많아진다. 과연 나는 어떤 삶을 바라고 있었던가.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돈이 삶의 기준이 되지 않던 시절의 그 순수한 마음을 기억해보면, 지금의 나의 선택들이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경쟁과 비교 속에서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나는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를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삶의 방향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선택들이 쌓여 방향이 만들어지고, 그 방향이 곧 나라는 사람이 되어간다.
상도덕을 지키는 삶은 때로 손해 보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그런 선택들이 결국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되어준다.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 결정, 남을 배려하는 태도,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시선…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속에서 내가 지킬 수 있는 작은 정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스스로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다시 상도덕이 존중받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삶이 흘러가는 이 길 위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누구와, 어떤 가치와 함께 걷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