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에 나섰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경로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걷고 싶었다.
지하철 대신, 버스 대신,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보기로 했다.
뚝섬한강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길.
저녁 햇살이 물러나며 붉은 노을빛이 퍼지고, 그 사이로 벚꽃이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뚝섬한강공원은 봄이면 다른 곳보다 먼저 벚꽃이 피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더욱 따스한 분위기가 공원 가득 번진다.
벚꽃은 이제 만개를 지나 낙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려 공중을 부유하다가, 이내 내 어깨 위에, 손등 위에 내려앉는다.
바닥엔 흰 눈처럼 꽃잎이 쌓여있고, 걷는 내 발자국마저 조심스러워진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멜로디와 벚꽃이 어우러져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퇴근길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하루의 힐링일 수 있겠다.
도심 속에서 이 정도의 여유와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문득 깨닫는다.
공원 한켠에는 벤치에 앉아 벚꽃을 바라보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며 웃는 아이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이 짧은 봄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계절은 언제나 그렇듯 순식간에 지나가고, 벚꽃도 머무는 시간이 짧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전엔 퇴근길이란 단어가 그저 지친 하루의 끝자락 같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걷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졌고, 벚꽃과 강바람이 피로를 씻어주는 듯했다. 무언가 거창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 반짝이는 감정을 스며들게 한다.
내일도 다시 반복될 출근과 일상이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 이 순간 덕분에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방향을 조금 틀어, 걸어서 돌아가는 길이 인생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느리지 않게, 봄바람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 그런 시간 말이다.
벚꽃은 곧 모두 흩어지고 사라지겠지만, 오늘 이 퇴근길의 기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